<금쪽같은 내 새끼> 선택적 함구증
육아예능 <금쪽같은 내 새끼> 6화에서 선택적 함구증 (selective mutism) 으로 힘들어 하는 7살 아이 진이가 나왔다. 선택적 함구증은, 불안증세 중의 하나로, 아이가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에 노출되었을 때 불안감에 압도되어 말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이가 그냥 "선택적"으로 말을 안하는 거라고 생각할런지 모르지만, 오은영 박사님 말대로, 이것은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되는 상황이지 절대로 아이가 쿨하게 입을 닫아버리는 상황이 아니다. 선택적 함구증이 진행되는 동안 아이는 극도의 불안함을 보이며 사람들과 눈도 못마주치고, 여러가지 다른 불안증세 들이 동반되기도 한다. 우리 딸의 경우 2살에 선택적 함구증과 함께 틱증상이 왔었다. 한창 재잘거릴 두 살 아이가 하루라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나게 충격적인 일인데, 울 딸은 그 증상이 한달 정도 갔었다. 그때 생각하면 정말 지금도 아찔하고 피말린다.
그동안 마음고생 해온 진이엄마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내내 울고, 나도 같이 울었다. 오은영 박사님 왈, 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응급" 상황이란다. 그 말을 들으니, 몇년 전 내 딸에게 선택적 함구증이 왔을 때 재빨리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내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을 내렸던 나의 판단이 잘못되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내 선택이 옳았을까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 프로를 보면서 다시금 확신이 생겼다. 다행인 일이다. 평생 의문을 품고 살아가긴 싫었을 테니까.
당시 한국 친정집에 2주 정도 머물렀었는데, 딸아이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방문 내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을 하지 않았고, 눈도 마주치기 어려워 했다. 모처럼 손녀딸을 만날 기대감으로 가득찼던 할머니, 할아버지의 당혹감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 당시 너무 충격을 받으면서도 딸의 마음도 걱정, 동시에 엄마, 아빠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도 들고 너무 복잡했다. 딸아이는 모든 말을 내게 귓속말로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나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프로그램에서 진이엄마도 하소연하듯 말하는데, 동네에 지나가다 보면 여러 어르신들이 아이에게 인사도 하고 말을 건내는데, 선택적 함구증이 있는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못할 뿐 아니라 대꾸도 못한다. 그러면 부모는 아이의 증상에 속이 타면서도 그 어르신에게 미안함을 표현하느라 이중삼중으로 힘들다. 하지만 절대로 예의가 없어서라거나, 대꾸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프로그램에서 나오듯 선택적 함구증을 겪는 아이 중에 주시불안을 함께 겪는 아이가 많다. 즉, 누가 똑바로 눈을 마주보면 극도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근데 이것은 사실 선택적 함구증을 겪지 않더라도 많은 아이들, 심지어 어른들에게서도 관찰되는 면이다. 즉, 눈을 똑바로 주시하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 꽤 많다는 것. 예전 20대일 때, 결혼한 친구의 어린 아들을 만났었는데, 아이들에 대한 경험이 없고 에너지가 넘쳤던 나는, 친구의 내향적인 아들에게 에너지를 쏟으며 관심을 퍼부었다. 그때 깨달았다. 관심을 받고 싶어하고 눈을 마주치고 싶어하고, 자신에 대한 질문 받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낯선 사람의 관심, 눈마주침이 극도로 불편한 아이들도 꽤 많다는 것을. 내 딸이 딱 그런 유형이었는데, 관심 받고 좋아했던 나로서는 그 마음을 헤아리기가 처음에 어려웠다. 이제는 이런 유형을 금방 알아보고 찰떡 같이 대처한다. 사람을 대하는 대처능력의 스펙트럼이 더 넓어졌고 나는 한층 더 유연해 졌다.
불안감이 엄습하여 감당이 안될 때면, 우리 딸은 언어적 소통법 보다는 비언어적 소통법을 선호했다. 즉, 목소리는 안나와도, 손가락으로 이런 저런걸 가리키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는 것으로 의사소통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불편해 했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나온 진이 역시 그러했다. 전문가가 알려주기를 수신호나 수화로 대화하는 법을 익혀두면 도움이 될거라 알려주었다. 갓난아이에게 수신호로 배고프다, 우유, 물, 더 (more), 등을 알려주면 말도 떼기 전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려본다면, 근육의 움직임이라는 게, 언어를 관장하는 혀근육을 움직이는 것보다 손이나 손가락 등의 소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덜 복잡하고 에너지가 적게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은영 박사님은, 선택적 함구증이 올 경우, 온몸이 긴장감으로 경직되어, 혀나 성대근육도 경직된 상태라는 말도 덧붙여 주었다.
이제 곧 학교에 들어가야 할 진이 때문에, 진이엄마는 진이의 사회생활을 앞두고 극도의 긴장감을 내비치며 최후의 수단으로 유치원 친구들과 엄마들을 실내놀이터로 초대한다. 유치원을 오래 다녔지만 유치원에서 친구들하고 말을 해본적이 없다는 진이를 이야기 하며 눈물을 흘린다. 낯설지 않은 이야기... 우리 딸 역시 어릴적 학교에서 혼자 지내는 적이 많았다. 집에오면 긴장도 풀리고 즐거워져 말을 많이 하지만, 학교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 듯 했다. 사회생활 자체가 당시 그녀에게는 고역인 듯 했다. 진이엄마가 유치원 친구 엄마에게 진이 이야기를 하며 속상해 하자, 친구엄마는 “진이 아픈거 아니니까 걱정 말라. 그냥 한마디로 왕소심한 아이인거다”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한다. 의미없이 지나가는 장면이었지만 나는 그 말이 아주 불편했다. 주변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위로를 건내지만, 나는 옆에서 아이를 24시간 지켜보는 엄마의 판단을 부정해 버리는, 심지어 의사의 진단 마저도 부정해 버리는 그런 위로 아닌 위로가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당시 여러 사람들이 위로라며 그런 말을 했다. 내가 오바한다고. 엄마가 너무 예민하다고.
당시 정말 피말리며 여러가지 검사도 받았고 (당시에는 소아과 의사가 자폐를 의심했었다.),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어찌해야 하나 방법을 마련하려 했다. 한가지 내가 진이엄마랑 달랐던 점은, 진이엄마는 프로그램 내내 진이에게 친구들에게 말을 좀 해보라고, 놀이터 가서도 계속 친구들하고 놀아보라고 시켰지만 (물론 촬영 중이니 억지로 그랬는지도), 나는 울 아이가 선택적 함구증과 틱증상이 겹쳐서 몹시 힘들어 할 때, 그녀를 대할 모든 사람을 미리 만나서 절대 관찰되는 특이사항에 대해 한마디도 아는 척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녀의 이미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이, 다른 사람들의 코멘트로 자신의 불안증세를 자각하며 더욱더 증폭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봉쇄해 버리고 싶었다. 나는 내 방법이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틱증상을 겪는 아이에게 상대가 그런 행동에 대한 질문을 한다거나, 언급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한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다른 것에 초점을 돌릴 수 있게 해야 마음이 안정된다. 한마디로 모르는척 해주고 다른 즐거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진이엄마가 진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너무 걱정을 하며 자꾸 그런 이야기를 진이에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관심을 다른데로 돌려야 한다.
선택적 함구증과 여러가지 불안증세로 힘들어 하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활기차고 오버스런 인사나 대화는 접근법으로 적절치 못하며, 대답을 종용하거나 그 사람에게 이목을 집중시키거나 그 사람을 빤히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다. 선택적 함구증을 앓거나 내향적인 아이들에게는 심지어 처음에 인사를 하지 않는게 좋을 수도 있다. 그저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조용히 옆에서 무언가를 몰입해서 재미있게 하다 보면 그 아이도 자연스럽게 그 액티비티에 동참하게 되면서 마음의 문을 연다. 대화를 굳이 하고 싶다면 절대로 그 아이에 대한 질문을 하지 말고, 어떤 제 3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더 바람직 하다.
다행히 우리딸은 이제 말을 할 수 있다. 불안증세도 많이 없어졌고 활기차 졌다. 아직도 낯선 곳에 가면 긴장하고 경계하지만, 많이 씩씩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이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으며, 대답을 해야하는 소셜세팅에 가면 불편해 한다. 문득, 보통 때 같았으면 킨더로 학교에 들어가 첫 진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야 할 이때, 코로나 덕분에 온라인 수업을 집에서 하면서, 낯선 선생님과 낯선 친구들을, 낯설지 않은 집에서 만나게 될 수 있어서, 딸의 긴장감이 조금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감사해진다.
Written in Fall 2020
By Jennifer Cho